Sungsoo – KR

Fictional

성수
논바이너리로 정체화한 지 5, 6년 됐다. 2018년쯤 전 애인과 얘기를 하다가 내 과거의 경험들이 트랜스젠더다웠다는 걸 깨달았다. 어릴 때 트랜스 걸처럼 산 경험과 기억이 길게 있는데, 이젠 더 이상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나는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하지만 편안한 영역에 있구나, 이런 게 논바이너리구나 깨달았다. 나는 게이 커뮤니티의 일원이지만 스스로 게이라고 부르는 걸 그만두기로 했다. 나에게는 남성을 좋아하는 더 이상의 동성애적인 이유가 없어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 아웃사이더라고 느껴지고, 특히 한국처럼 규범이 타이트한 사회에서는 어려움이 많다. 시스젠더와 비시스젠더의 욕망의 차이를 점점 더 느낀다.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이나 그리는 관계에 대한 이미지가 서로 다르기에 연애 등의 만남이 어렵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사랑, 레퍼런스
내 안의 다양한 관계의 레퍼런스도 한국 바깥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 게이들은 우선 이 사회에서 적응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고, 안 그래도 퀴어 이야기가 적은 사회에서 한 줌의 레퍼런스로만 사랑을 하는 경우가 많다. 남성의 이미지를 사랑하는 사람과, 논바이너리라는 정체성을 명확히 하려고 하는 나 사이에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연애라는 친밀한 관계에 있다 보면 서로 그리는 모습을 이야기하고, 상대가 그리되기를 원하면서 서로를 욕망하게 되는 과정들이 있지 않나?
그런 부분에서 부딪힘이 많았다.
픽션
<킬빌>의 루시 리우를 특히 좋아하는데, 극 중 유명한 대사가 있다.
“저 중국 여자가 지금 야쿠자 옷 입고 뭐 하는 거지라고 생각한다면 너희 다 내가 죽여버릴 거야.”
일본인인 야쿠자들은 아시아계 미국인인 그에게 아무 이미지나 씌우지만 이미 그는 그 상황에 도달해 있고, 바로 그 사람으로서 ’너네가 나한테 그런 걸로 의문을 제기하면 너네는 다 죽여버린다‘며 경고하고, 자기 정체성을 선언하는 것이다.
픽션 속 캐릭터는 아니지만 도자 캣이<스칼렛> 앨범에서 보여준 피범벅의 이미지들이 있다. 앨범 재켓에도 있고, 그 분장으로 무대에도 한 번 섰는데, 그런 살욕에 가득찬 듯한 이미지인 여성스러운 캐릭터들이 좋다. 아무래도 나는 지정성별 남성이고 남성 패싱이 되다 보니 나의 여성성을 어떻게 드러낼지가 내 정체성의 관건이고 내 욕망이다.
웃긴 얘기인데, <유전> 속 엄마도 참 좋다. 엄마가 아빠를 불태우고, 아들을 비난하며 소리 지르는 장면을 좋아한다. 분노를 마음껏 표출하는 그 에너지가 좋다. 내 안에도 분노가 많은데, 한국에 살면 제지당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그런 분노를 필터링 없이 표출하려다 검열당한 경험이 많다 보니 그렇게 분노를 마음껏 뿌리는 캐릭터들이 참 좋다.
<킬링 이브>에는 빌라넬이라는, 사이코패스 살인청부업자이자 레즈비언인 캐릭터가 나온다. 빌라넬은 키스하고 싶은 사람과 키스를 하고는 그를 죽여버린다. 한치 미래를 알 수 없는 뜨거운 에너지를 뿜어내는 그 이미지가 좋다. 어렸을 때는 <친절한 금자씨>를 많이 보았고, 대사도 다 외웠다.


소망
나에게 평화가 찾아오기를 바란다. 나는 창작에 관심이 많은데 내 얘기만 하는 대신 내가 속한 사회의 중요한 무언가를 더 끄집어내는 역할을 하고 싶다. 예를 들면 음악 하나를 듣더라도 이 음악이 나에게 즉각적인 쾌락을 주지 않아도 가사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 얘기를 나누고, 심지어 그가 모두가 선망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내가 그에게 정말로 무얼 배우고 느꼈는지를 세상과 공유하고 싶다. 그런 바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유튜브를 하고 있는데, 2022년에는 브이로그를 많이 찍었다. 이제는 조금 방향을 바꿔서 내 얘기를 본격적으로 해 볼까 한다. 나는 명예욕이 큰 사람이다. 유명해지고 싶고 짱이 되고 싶다. ‘논바이너리’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사회에서는 따분해 보일수록 살기 쉬워진다. 평범하고 개인성이 제거된 모습으로 살아가는 건 편한 일이지만, 나는 불편한 이목을 끌더라도 성수라는 존재가 여기 있구나, 싶게 분명하게, 시끄럽게 존재하고 싶다. 사람들이 뭐라든 신경 쓰지 않고 내가 입고 싶은 거 입고, 모두가 쳐다보고 있는 와중에도 편하게 행동할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Photo by Seyoung Lim
Styling by Yulia Gladkih
Hair & Makeup by Kao
BTS by Seyoung Byun, Seoyoon Eum